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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막여친 말고, 고막남친 말고, 그냥 고막사람 둘이 고막을 울리는 모든 것에 대해 이야기하는 바다 건넌 펜팔.
[✍️ by 🐳프로듀서 오막 x 🍊작가 한아임]
💌 매달 1일, 15일에 발송 💌
오막아,
너도 날이 쌀쌀해짐에 따라 여러 방식으로 따뜻함이 느껴지는 노래를 선곡해서 들었구나. 나도 갑작스럽게 추워진 날씨에 알맞은 노래로 따뜻함을 유지했다. 그리고 그대가 고른 노래들도 도움이 되었다.
‘공짜 사랑’밖에 줄 수 없다는 가사가 오막에게 와닿았구나. 그래, 그대 말대로 귀여우면서 안타깝고 쓸쓸하기도 하다. (2AM의 “이 노래”가 생각나는군. 줄 수 있는 건 이 노래밖에 없다고. 참말로 절절한 가사다.)
한편으로는, 사랑을 받을 수 있는 사람은 어차피 자기 안에 사랑이 있는 사람밖에 없다. 왜냐하면, 자기 안에 사랑이 없어서 계속 타인에게 달라고 하면, 계속 받아야 한다 ㅎㅎㅎㅎㅎ 사실은 사랑은 ‘받을’ 수가 없다. 사랑 말고 다른 것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뭐랄까, 결국 각자 알아서 해야 한다는? 외롭고 무서울 게 아니라, 우리 각자에게 그럴 힘이 있단 뜻이다. “You complete me”가 로맨틱하게 들릴 수도 있지만, 어찌 보면 상당히 무섭다.
최근에 “The Love Witch”라는 영화를 봐서 더욱 이런 생각이 든다. MUBI라는 영화 사이트에서 핼로윈을 맞이해 스태프들이 고른 영화 중 하나였는데, 묘하게도 핼로윈은 물론이고 발렌타인데이나 크리스마스에도 어울릴 것 같다.

정말이지, 호러란 “A씨가 B씨더러 A씨의 결핍을 채워달라고 하는 것”이란 것을 여실히 보여주는 영화였다. 그런데 그 호러가 레트로스러운 유머로 과장되어 흥미진진하다. 그리고 여기서 호러란 단지 B씨에게 해당하는 것이 아니다. A씨 본인에게야말로 호러다! A씨는 타인에 의해 자기가 채워진다고 여길지 모르겠지만, 그러면 그럴수록 결핍의 늪에서 허우적댈 뿐이다.
나는 female gaze적 접근에는 별로 관심이 없는 반면—그 외 성별의 시선에도 관심 없음—이 영화의 창작자는 그러한 접근에 관심이 깊은 것으로 알려졌는데, 픽션물이란 단 한 가지의 방식으로만 해석할 수 있는 게 아니지 않니. 그러면 재미가 없겠지. 그래서 나는 창작자의 의도와는 전혀 상관없는 방식으로 이 영화를 재밌게 본 것 같다.
그리고, 아, 정말이지 이 창작자는 ‘창작자’라고 부르는 것이 마땅한 이유가, written directed edited produced music-scored by Anna Biller더라…! 영화의 플롯적 요소 외에도 볼거리가 너무 많다. 테크니컬러 영광이란 이런 것인가…! 1937년 ‘스타 탄생’ 이후로 영화에서 무지갯빛 영광을 이렇게 온몸으로 느낀 건 처음인 듯. 보는 재미가 있었다, 정말. 절대 소설이나 만화나 다른 어떤 미디엄이 아닌, 영화여야 하는 영화였다고 느껴진다.
본격 한아임이 들은 따뜻한 느낌 노래. 지극히 주관적. 그리고 따뜻함에는 가사가 중요하다. 꼭 일이 잘 풀리는 내용이어야 하진 않고, 왠지 뭔가 꽂히는 부분이 있으면 감사하다.
여기서 가장 꽂힌 부분은 참 랜덤하게도:
서울의 날씬
몇 달째 비만 내렸어
우울한 100일
무궁화꽃은 볼일 없겠군요
집 앞 화단 앞에
다 시든 잎이 나 같아 보이지만
나는 왠지 이런… 매우 특정한 가사가 좋을 때가 있다. ‘무궁화꽃’이라니? 왜? 장미 뭐 이런 건 흔한데. 무궁화꽃이나 ‘집 앞 화단’ 이런 말의 느낌이 좋다.
위 곡은 작사 작곡 보컬 이강승 님.
가사 전체가 너무 다 좋다. 흑흑. 밥 딜런이 노벨문학상을 받았다는 것에 세상이 들썩이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참말로… 만약 내가 시를 쓰는데 노래도 잘하고 작곡도 할 수 있다면 나는 가수를 할 것 같다.
내가 가장 너무 좋았던 부분은:
그 모든 순간은 우리가 맞다는 대답을 할 거예요
그러니까, 사람인 당신이 하는 대답도 아니고 사람인 내가 하는 대답도 아니고, ‘그 모든 순간’이 대답을 한다는 거 아니겠니.
그리고 또
익숙한 향기에 그대가 숨을 못 쉬고
내 하루를 돌아볼 때
숨을 못 쉬는 건 그대인데 그대가 돌아보는 건 그대의 하루가 아니고 내 하루래.
호오… 따뜻한 가사 냠냠. 마치 호떡이나 군고구마 먹듯이 쏙쏙 냠냠 마음으로 먹는다.
아… 길에서 호떡 사 먹다가 꿀에 혀 데였을 때 생각 나네. 그것과 다르게 이 노래는 모든 것이 조화롭다. 가사와 목소리와 악기 등 모든 것이 조화롭다. 공기와 소리의 조화도 완벽해…!
이 노래 가사의 좋음은 말해 무엇하랴.
부푼 꿈을 안고 잠에 드는 거
그것보다 좋은 것도 없는걸
가사 내용 자체가, 이미 이뤄진 꿈과 이루지 못한 꿈, 놓친 꿈, 앞으로 이룰 꿈, 이룰지 모를지 알 수 없는 꿈, 안 이뤄지더라도 꿀 꿈이 가득 담겨 있어서, 참말로 제목을 ‘꿈’ 말고 뭔가 다른 걸로 지을 수가 없었을 것 같다.
한편, 나는 적재 님에 대해 하나도 모른다. 적재 님 노래만 알고 얼굴도 몰랐는데, 활동명이 궁금해서 검색해 보았더니 이런 기사 내용이 뜨더라:
DJ 김영철은 “적재 음악은 좋아하는데 적재가 누군지 모르는 청취자를 위해 질문을 준비했다. 적재는 본명이냐”고 물었다.
이에 적재는 “아니다. 본명은 정재원이다. 적재는 중학교 시절 친구들이 지어준 별명이다. 이유는 없다. 한때 학교 내에서 이름에 ㄱ을 붙이는 게 유행이었다. 친구들이 ‘적재야’라고 불러서 ‘적재’로 짓게 됐다”고 답했다.
이럴 수가. 그냥 붙인 별명인데 어째서 때문에 이렇게 운치 있게 들리는가. 목소리 때문이겄지… 목소리가 운치 있으니 이름이 뭔들…
아름다운 가사가 아닐 수 없다. ‘모질다’는 사전 정의가 분명 두 개다.
- 모양이 둥글지 않고 모가 나 있다.
- 성격이 원만하지 못하다.
1번이 먼저인데, 왠지 나는 2번으로 사용되는 경우만 들어왔던 것 같다. 그런데 이 가사에 ‘모질다’가 말 그대로 도형에 모가 져 있다는 뜻이면서도 2번의 뜻으로도 쓰이니, 캬… 이것이 한국어의 맛이로구나…
오늘은 곧 사라져 가는 사람들 속에서
아니 더 큰 먼지가 되어 온 날
날 바라보는 사람들 시선에 갇혀 지내도
나는 아직 모질고 거친 거야
도형적(?) 비유를 좋아한다. 비유랄 것도 없이, 그냥 그 개념들이 신기하다. 예를 들어 이런 거. ‘점’이 수학적으로는 아무 공간을 차지하지 않는댄다. 그러니까, 물질세계에 사는 우리의 눈에는 사인펜 같은 걸로 점을 찍으면 점이 어떤 면적을 차지하는 것으로 보이지만, 수학적으로는 점은 아무 공간도 차지하지 않는대, 개념적으로. 길이도 넓이도 두께도 없으니 그것은 아무 공간도 차지하지 않는대.
매우 솔직한 사랑 가사다.
알면서 자꾸 그래 난 너를 못 놓겠어
이 ‘그래’라는 단어는 참 특이하다. 한국어 특유의 ‘주어 없어도 됨’의 특성이 너무나 잘 드러난다. 무엇이 ‘그러하다’는 말인가? 그가? 상황이? 그의 행동이? 정확히 알 수가 없다. 그것이 매력이다. 아무래도 총체적으로 왜 ‘그러하냐’는 거겠지. 너는 존재가 왜 그따위냐…!
알면서도 또 쓰고 또 듣는, 그만큼 타임리스한, 그만큼 타임풀한 이별 가사다.
이제 나는 너를 잊었어
아쉬울게 하나도 없어
정말로 잊어서 아쉬울 게 하나도 없으면 가사는 가사라 치더라도 가사까지 붙인 노래는 단연코 나오지 않는다는 걸 우리는 다 알쥐알쥐…
그리고 내가 또 냠냠 받아먹은 부분은
어제 너는 나를 버렸어
처음부터 뙇! 대놓고! 버린 건 버린 거다.
그리고 또한,
시간이 모자라 널 생각하고 아파하기엔
하… 생각하고 아파할 시간도 없는 현대인의 삶입니까? 혹은 그러하다고 믿고 싶은 나의 삶입니까? ‘남들’도 그러하다고.
일단 강아지가 졸귀라서 클릭했고, 강아지 표정이 해탈해서 감동했다.
이 ‘아이고’라는 단어도 너무 좋다. 한국어의 ‘아이고’는 그 특유의 감성이 있다. 별로 한스럽게 안 말해도 한이 서려 있다. 그런데 이 노래 가사 전체가 실제로 좀 한스럽다. ㅠㅠ
내가 뭘 그렇게 잘못했냐
너 땜에 왠지 하찮아져
네가 나를 버리기 전까지
우린 아무 문제 없었잖아
여기서도 ‘버리다’는 단어를 대놓고 쓰는 게 너무 좋다. 버린 건 버린 거다. 저항해봤자 결핍만 강해진다고…
그리고 마지막 결론:
아이고 의미 없다 나만 바라봐 주는
우리 집 강아지만 있으면 된다
그것은 깨달음이었다. 강아지는 영원하다.
자전거 얘기 나와서 오막 생각남.
여기서도 제일 좋은 부분이
어디든 갈 수 있을 것만 같아
뭐라도 할 수 있을 것만 같아 그랬어
‘그랬어’ 때문에. ‘그러하다’는 단어는 참말로… 참말로 그러하다! 무엇이 그랬다는 건지 정확히 모른다는 게 매력이다. 뭘 그랬을까? 그랬기 때문에 자전거를 탔다는 건지, 아니면 가사에 나오지 않은 다른 어떤 역사가 있었던 건지. 왠지 후회가 느껴지기도 하고.
그리고 ‘라이딩’이라는 단어는 (ride라는 단어의 모든 형태가) 유용한 것 같다. 어떤 외국어 단어는 왜 한국어 대신에 쓰이게 됐는지 알 수 없는데, 라이드는 좀 유용하다. ‘야간 타기’는 약간 이상하게 들리기 때문이다.
아뉘 이 노래를 말이야 내가. 어떤 플레이리스트에서 랜덤하게 찾았는데. 제목이 이 제목이 아니었던 거야. 그런데 댓글에 누가 원래 제목을 찾아 놨더라고. 제목이 중간에 바뀌었던 건지? 모르겠어.
아무튼 근데 왠지 중독성 있고, 약간 과거의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가운데, 가사가 상당히 빡세다.
위에 등장한 가사 몇 개에서 ‘버리다’를 대놓고 쓴 것보다 더욱 대놓고:
너무 슬픈 맘에 글로 적어놓은 일들
더는 보기 싫어서 덮어놓은 이불
눈을 뜨면 가장 먼저 보게 되는
하나도 궁금하지 않은 마음과 미움
빠르게 달려가는 자동차
창밖으로 버렸었던 말
그렇게 말은 하지 않아도
‘누군가 밟고 넘어지기를’
바람이 부는 건물 옥상 위
아래로 내던졌었던 말
그렇게 말은 하지 않아도
‘누군가 맞아 쓰러지기를’
!!! “The Love Witch”의 알록달록 귀여운 레트로 그로테스크를 좋아한 나는 이 가사도 좋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추우니까 따뜻한 가사 냠냠이란 이런 것이지. 반복되는 멜로디가 몽환적이다. 시계태엽 월드에 갇혀서 뱅글뱅글 도는 느낌이다.
그리고 ‘마음’과 ‘미움’이라니. 지난 편지에 이어서, 또 “마스크걸”이 생각난다. 김미모와 김모미, 그리고 플롯 전체의 대칭이 아름다웠다.
이번 편지를 쓰면서 매우 즐거웠다. 사실 원래 생각했던 테마는 ‘좋은 기분이 유지되는 노래’와 좋은 기분 유지의 가치(기분을 좋게끔 하는 것이라기보다는, 이미 좋은 기분을 유지하는 가치)에 대한 것이었는데, 어쩌다 보니 맛있는 따뜻한 가사를 냠냠하는 내용이 되었다. 좋은 기분의 유지에 관한 건 언젠가 다음에 쓰겠다.
아무튼 그래, 나 한국 가면 용인 구경 좀 시켜줘라! 그대가 말한 카페도 가자! 우리가 명색이 고막사람인데 좋은 노래 나오는 카페 가야지! 오막이 아침잠이 없어진다니 좀 충격인데, 더 아침형 인간이 되기 전에 빨리 만나야겠구나.
작년에도 오막이 겨울에 음원 내지 않았어? 올해도 오막은 겨울사람이로구나. 작업이 순조롭게 풀리길 바란다.
냠냠 아임이 보냄.
위의 글은 뉴스레터 ‘고막사람‘의 한아임 파트입니다. 구독해줘요 ♥️
고막여친 말고, 고막남친 말고, 그냥 고막사람 둘이 고막을 울리는 모든 것에 대해 이야기하는 바다 건넌 펜팔.
[✍️ by 🐳프로듀서 오막 x 🍊작가 한아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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