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서 오세요, 인간 동지.

여기서 시작하세요.

고양이는 상자 안에 들어 있었다.

공개 날짜:

정말 예쁜 고양이었다. 새까맣고, 눈은 동그랬다. 땡글땡글. 현실계의 고양이가 아니었다. 캐릭터화된 고양이었다. 마치 슈렉인가? 거기 나오는 장화 신은 고양이처럼. (걔가 귀여운 척 눈을 빛내는 밈이 있었던 것 같은데.)

검은 고양이는 상자에 들어 있었다. 그 애는 캐릭터화되었으나 분명 ‘살아’ 있었는데도 (그렇다고 여겼는데도), 나는 그 애를 상자에 넣었다. 물론 고양이는 상자를 좋아한다. 그런데 자기가 들어간 게 아니라, 내가 넣었다는 점이 중요하다.

고양이가 싫어했으면 넣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고양이는 전혀 저항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매우 편하게 잠을 잤는가? 하면 그렇지도 않았다. 상자는 마치 필통처럼 생겼었는데 (다양한 상자에 넣었는데, 넣을 때마다 그랬다) 관짝 같이 생겼다고 해도 좋겠다. 왜 그, 필통 중에, 네모난 필통 있지 않은가? 관 모양의. 그 네모에 바깥 통이 있고 안쪽 통이 있어서, 안쪽 통에는 연필 등 필기구를 넣고, 바깥 통이 안쪽 통을 감싸는 형태의 (끼우면) 그런 필통. 그런 필통 같은 관 상자에 고양이를 넣으면, 고양이는 (만화에 나오는, 참 정말이지 캐릭터화된 고양이는) 그 커다랗고 동그란 눈을 깜빡이며 나를 바라본다. 내가 필통을 닫기를 기다리는 것이다.

그러면 나는 필통을 닫고…

얼마만큼의 시간이 흘렀는지 모르겠는데, 하여간에 필통을 다시 연다.

그러면 고양이는 마치 단 한 순간도 나를 잊지 않은 듯, 똑같은 그 동그란 눈을 깜빡이며 나를 보고 있는 것이다.


꿈을 꿀 당시, 나는 고양이가 귀여웠다. 일어나고 나서도, 그냥 귀여운 고양이를 키우는 꿈을 꿨다고 생각했다. 정말 신기한 고양이기도 하지, 상자에 넣길 기다리고, 내가 넣으면 가만히 있고, 내가 상자를 다시 열면, 마치 상자가 닫히는 시각과 열리는 시각 사이에 나를 기다리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는 듯 나를 올려다 바라보다니. 그것도, 상자가 필통 모양이었다고 하지 않았는가? 즉, 고양이가 몸을 동그랗게 말 수 있는 상자가 아니었다. 고양이가 사람처럼 쭉 뻗어서 누워 있을 수 있는, 그런 상자였다. (물론 실제로 이렇게 편히 자는 고양이들도 있다. 사람이 대자로 뻗어 자듯이 ㅎㅎㅎ 유튜브 보면 그렇더라…)

그러니까, 내가 고양이를 괴롭히는 게 꿈의 메시지는 아니었을 것이다. 실제로 나는 고양이를 잘 돌보고 있다고 생각했고, 웃는 표정스러운 고양이의 그 땡그란 얼굴을 보면서 고양이도 만족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 꿈 이후 며칠이 지나며 드는 생각이…

섬뜩하네?

섬뜩하다.

고양이는 나를 기다리는 것 외에 상자 안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꿈에서 나는 그 점에 대해 약간 놀라긴 한 것 같다. 기분이 나쁘지도 좋지도 않았는데, 굳이 한 방향을 고르자면, 살짝 좋았다고 하겠다.

왜?

나는 고양이를 마음대로 할 수 있었고, 그것이 고양이에게 전혀 불행해 보이지 않았다. 고양이는 관짝 같이 생긴 그 상자에 순순히 들어갔고, 나를 기다렸다.

그런데 왜 이제 생각해 보니 섬뜩하지?

마음대로 할 수 있다는 자체가 뭔가 이상하다는 반증이니까. 아무리 고양이가 ‘괜찮은’ 상태여도, 뭔가 이상하다는 증거다. 내가 모든 것을 예측할 수 있는 고양이라고?

그 고양이는 살아 움직이는 듯했지만 캐릭터화된 고양이었고, 진짜가 아니었다. 나는 진짜가 아닌, 눈이 땡그란, 웃는 상의 고양이를 상자에 넣고, 상자에서 꺼내며, 꿈 속에서는 그것이 살아 있는 고양이일 리가 없다는 점을 눈치채지 못했다. 며칠이 지나도록, 그냥 꿈이라서 캐릭터인 것이겠거니, 했다.

섬뜩하지 않은가?

내 무의식을 너무 탈탈 털어 공개하는 거 아닌가…


“사이코지만 괜찮아”를 보고 있다, 요즘. 이것은 고문영 작가의 동화책에 나올 법한 줄거리 아닌가? 언젠가 써먹어야지. 어른을 위한 동화를 써야지. 정말이지, 원래가 동화는 어른을 위한 거다. 섹스랑 살인이 얼마나 많이 나오는데, 요즘처럼 애들한테 섹스랑 살인을 하지 말라고 하는 시대에 동화가 애들 전유물이 된게 참 웃기지.

써놓고 보니 내 말이 더 웃기네. ‘애들한테’ 섹스랑 살인을 하지 말라고 한다니! 그렇다면 어른들은? 살인은 하지 말라고 하지, 일반적으로. 근데 섹스는? 섹스도 사실 별로 하라고 하진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