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 큰 어른이 주변이 시끄러워할 건 고려하지 않고 시끄럽게 처웃는 것이 얼마나 천박한지를 지금 이 순간 또 느끼고 있는 중이다. 이러한 걸 느껴야 했던 건 근 10년간 단 두 번뿐인데, 그 두 번째가 지금이다.
네가 웃는다고 남들이 다 기뻐해야 하는 게 아니야. 해는 다 저물었는데 온 창문은 사방팔방으로 열어놓고, 자기가 자기 집 안에 있기만 하면 자기의 무언가가 바깥으로 새어간다는 걸 모른다는 양 처웃는 게 얼마나 천박한지를 모르다니. 얼마나 멍청하고 남한테 민폐를 끼치는 게 자연스러우면, 40대인지 50대인지 모를 비주얼을 한 인간이 저렇게 처웃을까?
네가 처웃을 때마다 남들은 오히려 소름이 끼친다고. 지금 온 사방팔방이 너 빼고 다 조용해. 풀벌레 울리는 소리가 들릴 지경이야. 여기 다 사람 사는 데인데도 말이지. 이 조용함이 정상이라고. 너만 처웃어서 쩌렁쩌렁 울리는 걸 모른다는 건, 정말 귀가 없니? 어떻게 저 집 애들보다도 어른이 저런 볼륨으로 웃지? 다른 사람들 말하는 걸 다 묵살시켜 버리는 웃음이야. 아주 그냥 모든 존재를 말살하는 웃음. 자기만 좋으면 되는 웃음.
저런 사람들은 어떻게 저 나이가 될 때까지 생존할까 싶다가도, 저런 사람도 생존하는데 웬만해선 생존하겠네, 싶다.
하여간에, 나는 태어나서 저런 볼륨으로 웃어본 적이 없고 저런 볼륨으로 웃는 다른 사람을 본 적도 없다만 (10년간 단 두 번 중 첫 번째 사람도 저런 볼륨으로 웃진 않았음), 앞으로도 저딴 식으로 더럽게 웃진 말아야지. 지가 즐거운 거랑 개민폐인 게 저 나이 되도록 구분이 안 갈 거면, 그때 나는 그냥 죽어야겠다. 첫 번째 사람은 “다른 사람이 웃는 게 어떻게 싫을 수가 있지”를 공용 공간에서 시전하던데, 이 두 번째 사람도 그런 멘탈인가 싶다.
다른 사람이 웃는 게 싫은 게 아니라 너처럼 천박하게 웃는 게 싫은 거야. 남의 평화, 남의 고요는 전부 다 학살해 버리는 살인자적인 네 웃음이.
오바 같은가?
아직 출판도 안 된 누아르 어바니즘을 인용해 보지.
폭이 좁고 소리가 울리는 도시의 거리에서 채찍을 찰싹대는 지옥 같은 소리야말로 소음 중에서 가장 부당하고 수치스러운 것으로 비난받아야 마땅하다. 그것은 삶의 모든 평화와 감성을 박탈한다. 채찍이 찰싹대는 것을 용인하는 것만큼 인류의 우둔함과 무분별함을 명확히 하는 것도 없다. 이 갑작스럽고 날카로운 찰싹임은 뇌를 마비시키고, 모든 명상을 파괴하며, 생각을 살해한다. 머릿속에 생각이란 게 있는 자라면 이 소리에 고통을 느낄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모든 찰싹임이 어떤 활동에 전념하고 있는 수백 명의 사람들을 방해하는 게 분명하다. 그 활동이 제아무리 사소하더라도 그렇다. 또한 사상가의 명상을 교란하고 고통스럽게 한다. 이는 마치 머리를 몸으로부터 절단하는 사형 집행인의 도끼와 같다. …… 망치질, 개 짖는 소리, 아이들의 비명 소리는 가히 끔찍하다. 그러나 생각의 진정한 살인자는 채찍의 찰싹임, 단 하나뿐이다. 그 목적은 때때로 찾아오는 사색에 유리한 모든 순간을 파괴하는 것이다.
쇼펜하우어
이것도 오바 같아? 어디 천박한 웃음이든 천박한 채찍이든에 둘러싸여 고문을 당해봐. 그 소리가 나오나.
나는 저딴 식으로 웃을 바에야 앞으로 웃을 일을 만들질 말아야지. 저렇게 웃을 수밖에 없다면 너무 수치스러울 것 같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