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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명녀 치명남이 되지 못하는 이들을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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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명녀 치명남 향연의 끝판왕, “씬 시티.” 거기에 추가로 얹어서, 폭력, 돈 얘기, 기타 등등 각종 왜곡과 과장이 등장한다.

아니 그래서, 이런 영화를 대체 왜 보냐. 왜 만드냐. 이렇게 생각하시는 분들도 있을 수 있지 않겠습니까? 이 성에 대한 집착에 가까운 묘사. 이 비현실적인 왜곡과 과장. 이 돈과 권력에의 목매닮. 그리고 걷잡을 수 없는 폭력. 여기서 대체 무슨 카타르시스를 느끼냐? 왜 느껴야 하냐? 이렇게 생각하실 수 있습니다.

아이러니한 것이, 자본주의 내지는 물질주의 사회가 되면서 성과 부에 관련된 저항이 더 커지는 거 같지 않나요? 저는 이게 집착과 관련이 있는 거 같은데. 물질주의 사회에서 성과 부에 대해 더 열려 있는 것 같지만, 그리고 외면적으로는 그래 보이지만, 실제로는 집착이 커지면서 저항도 압도적으로 커진 것 같아요. 그래서 그걸 해소, 정화하기 위해서 <씬 시티> 같은 영화들이 나오는 거고, 이런 영화를 없앤다고 해서 무슨… 세상이 깨끗해지고 그런 게 아니라, 이런 영화가 없으면 오히려 세상이 깨끗해지지 못하는, 정화되지 못한다는 게 제 주장? 내지는 생각입니다.

성이나 부나 폭력이나 왜곡 및 과장이 더럽다는 게 아니고요, 걔네는 그냥 걔네 자체로 있는 애들이고, 그에 대한 집착과 저항. 즉, 성은 엄청 좋아. 혹은 성은 엄청 나빠. 아니면 폭력은 엄청 좋아. 혹은 폭력은 엄청 나빠. 이런 감정들이, 굳이 말하자면, 음… 불필요하단 거죠. ‘더럽다’고 보기엔 애매하고. 왜냐면 이런 집착과 저항도 그냥 그 자체로서 있는 애들이니까. 그러나 그 강도가 심하면 심할수록 반대편에 매칭되는 힘이 등장합니다. 그냥 작용 반작용이에요. 누르면 저쪽에서 밉니다. 내가 벽을 주먹으로 치면 벽도 날 때려요. 벽을 살살 쳐보세요. 그다음에 세게 쳐보세요. 살살 치면 벽이 날 살살 때리고, 세게 치면 벽도 날 세게 때립니다.

그런데 실제 생활하면서 벽을 세게 치고 싶다고 매번 세게 치다가는 손의 모든 뼈가 산산이 조각 날 것이니. 그리고 비슷하게, 성, 왜곡, 돈과 힘, 폭력 같은 것에 대한 집착이나 저항을 실제 생활에서 다 실현했다가는 세상이 전체적으로도, 개인적으로도 미쳐 돌아갈 테니, 픽션으로 해소하는 겁니다. 정화하는 겁니다. 그게 픽션의 매우 큰 역할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일각에서는 ‘폭력적인 게임을 하면 폭력성이 커진다.’ 이런 주장도 있던데. 그러는 사람도 있겠죠? 그런데 폭력적인 게임을 해서 실제 생활에서 폭력을 휘둘렀을 법한데 안 휘두른 경우에 관한 연구는 진행하기가 좀 더 어렵죠. 이런 연구나… 실제 세계라고 불리는 곳 전반에서는, 벌어진 일을 관찰하는 게 벌어지지 않은 일을 관찰하는 것보다 월등히 쉽지 않습니까?

누가 화가 나서 화재를 일으킨 건 관찰하기 쉽습니다.

그런데 누가 화가 나서 화재를 일으킬 뻔했는데 영화 보고 스트레스를 풀든, 샌드백을 쳐서 스트레스를 풀든, 게임을 하고 스트레스를 풀든, 등산을 하고 스트레스를 풀든, 해서 화재가 안 난 건 관찰하기가 거의 불가합니다.

온 세상 사람들 불러다 모아가지고, ‘너 오늘 화재 일으키고 싶었는데 안 냈어? 왜 안 냈어?’ 이거 물어봐야 하잖아요.

꿈도 마찬가지입니다.

[Ep. 54] 해소, 정화, 카타르시스, “씬 시티”

꿈 얘기는 본 에피소드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