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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누구의 집도 아닌, 소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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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10월에 인스타그램에 올렸던 글의 업데이트본.]

어제 인스타그램+페이스북+왓츠앱이 전부 다운됐었다. 홀로 살아남은 (?) 트위터에는 웃픈 짤들이 오갔다. ‘최후의 생존자 트위터,’ 이런 류. 오징어 게임이 많이 언급됐다.

근데 그런 짤을 주고받는 사람들도 알고 있었을 거다. 트위터 역시 안전할 수 없음을.언제라도 트위터 역시 사라져서 거기에 자신들이 올렸던, 올릴 예정이었던 모든 것들이 물거품이 될 수 있음을.

페이스북+인스타그램+왓츠앱이 죽어 있던 동안, 트위터에는 진짜인지 우스갯소리인지, 이 사태 때문에 애인이랑 헤어질 지경이라는 사람들 얘기가 올라왔다. 페이스북 계열 소셜이 없으면 애인이랑 효율/효과적으로 연락할 방도가 없다는 것이다.또한 자기가 할 예정이었던 라이브스트림을 못 해서 사업에 돌이킬 수 없을 정도의 지장이 생겼는데, 소셜은 어차피 무료이니 피해보상도 못 받는다는 사람들도 있었다.

우스갯소리인지 진짜인지…안 웃기니까 진짜인가…

어쨌든, 다시금 소셜은 이용자 그 누구의 집도 아니라는 걸 실감했다.비유하자면 소셜은 광장인데, 페이스북 계열 광장을 집으로 믿었던 사람들은 안타깝게도 어제 노숙자가 되었다.

그 광장에 자신의 모든 사회적 관계가 다 의존하고 있었나 보다. 사랑도 있었고 일도 있었다. 그게 단칼에 잘려서 관계가 정지, 마비되었고, 아무리 두 발을 물질세계의 땅에 딛고 있었어도 이들은 정처 없이 부유했다.그 부유가 너무 춥고 배고팠는지, 남아 있는 유일한 거대 광장인 것처럼 여겨진 트위터는 근래 최고의 트래픽을 기록했다. 아마 광장 밖은 거대한 광야이기 때문인가.

나도 춥고 배고픈 광야가 싫다.어떤 이들은 춥고 배고픈데도 불구하고 그걸 이겨내고 위대해지는데, 나는 일단 춥고 배고픈 것부터 해결해야 하는 부류의 인간이라서 그렇다.춥고 배고픈데 다른 걸 먼저 한다? 이를테면 마음의 양식이 되는 걸 찾는다든지? 아니, 절대 네버.

나는 등 따습고 배부른 게 참 좋다. 내일도 등 따습고 배부를 것을 아는 것 또한 참 좋다.

그러니 물질세계에서든 인터넷 세계에서든, 춥고 배고플 상황을 만들지 않는 게 나에게는 매우 중요하다. 노숙자 내지는 광야인이 된다면 나는 절대 살아남지 못할 것이다.

광야가 무섭기에 나는 광장에 대해 항상 의구심이 있었다.광장은 언제나 나를 환영하는 척하지만, 실은 내 것이 아니다. 광장 자체뿐만 아니라 광장 내 나의 계정도 엄밀히는 내 것이 아니다. 광장은 나를 들여보내’주는’ 거다. 그러니까, 나는 늘 광장 주인의 허락이 필요하다. 접속할 때마다 이용 약관에 동의하고 들어가는 것이며, 광장의 주인은 언제나 나를 제거할 권리가 있다. 어떤 때는 주인이 임의로 그렇게 하고, 어떤 때는 주인도 원치 않는 서버 다운 사태가 벌어진다는 게 차이일 뿐. 이러나저러나 나는 항의해봤자다.

어제 그런 일이 벌어지니, 내 집이 더욱 소중하게 느껴졌다. 그 집을 ‘인터넷 세계 자가 홈’이라고 부르는 건 그게 웃길 거라고 여겨서가 아니다. 이 집이 없다면 어제처럼 주요 광장들에 들어가지 못하는 날에 내가 갈 수 있는 곳은 광야뿐일 것이다. 광야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정신력이 있는 사람은 괜찮겠지만, 말했듯이 난 아니다.

광장이 아무리 빛나고 화려하고 거대하며 내 집은 작은 단칸방일지라도, 후자는 믿을 만하게 따습고 배부르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광장에 올리는 모든 것을 자가 홈에도 올리고, 백업을 한다.물질세계의 집에 웬 재앙이 닥치면 들고 도망칠 가방에 인터넷 세계 집을 백업한 드라이브를 여럿 넣어둔다.

그리고 부디 세상이 멸망해도 전기만은 어떻게든 들어오기를 바라 본다. 광장은 다 망해도 되는데, 사실 내가 문득문득 진정으로 걱정하는 건 전기다. 후… 전기.전기 없이 내가 생산할 수 있는 것은 0에 가깝다.

혹시나 전기가 들어오지 않는 세계가 도래할까 봐, 언제쯤이면 고성능 초소형 휴대용 발전기와 진정 노마딕한 물질세계 집이 만들어질까 상상한다.

물질세계가 불바다나 물바다가 될 가능성까지 고려한다면, 날 수 있는 집이 필요하겠다. 그게 오토파일럿까지 되면 나는 정말이지 하늘을 날 듯할 거다.